조선왕릉 이야기 : 경릉(景陵)
경릉은 구리 동구릉 중의 하나로 조선 24대 왕 헌종과 두 왕비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능침이 하나의 언덕에
조성되어 3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입니다.
경릉의 역사적 배경
1843년 8월 25일 효현왕후가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능호를 경릉으로 정하고 산릉의 후보지로 세 번의 간심을
거쳐 목릉의 옛터에 능침을 자리 잡았다. 목릉의 옛터는 능상의 석물이 무너지는 문제가 지속되어 1630년에 목릉을 천거
하고 남겨진 자리다. 1849년 6월 6일에 헌종이 창덕궁의 중희당에서 승하하자 능호를 숙릉으로 정하였으나, 효현왕후의 경릉에 쌍릉으로 조성하게 되었고 능호를 경릉으로 합하여 부르게 되었다.
1903년 11월 15일 효정왕후가 경운궁 수인당에서 승하하지 3차의 간심을 거쳐 경릉 좌변으로 능침을 조성하게 되면서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의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경릉의 형식과 특징
경릉은 동구릉의 원릉과 숭릉 사이에 동향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효현왕후의 능침이 조성될 때 세운 능상 석물을 헌종과
효정왕후가 합부되면서 영역을 점차적으로 넓게 배치하여 능상의 위계는 상계와 하계 2단으로 구분하고, 상계는 혼유석과 망주석을 배치하고, 하계에는 장명등을 중심에 놓고 좌우에 문무석인이 배치되었다.
언덕은 3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되도록 좌우로 넓게 형성되었으며, 곡담도 좌우로 넓은 장방형이고 3기의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갖추지 않고 난간석으로 연결되었다.
조선의 왕과 왕후의 능침이 하나의 언덕에 합부 될 때는 서쪽에 대왕릉을 배치하고 동쪽에 왕후릉을 배치하여 쌍릉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경릉은 헌종과 두 왕후의 능침을 나란히 배치하여 쌍릉의 확장형으로 볼 수 있는 삼연릉으로
조성되어 조선 후기 능침 배치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헌종의 삶과 업적
조선 제24대 왕 헌종은 1834년부터 1849년까지 재위한 왕으로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다.
순조의 손자이며, 효명세자의 아들로 효명세자가 일찍 요절하자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순조가 승하하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조선의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즉위하였으며, 이로 인해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씨가 6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 과거제도와 삼정의 문란으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신분 질서의 붕괴와 자연재해도 발생 등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겪으면서 권문세가에 시달렸던 대표적인 왕이었다.
헌종은 중앙집권적인 국가 통치를 추진하고 향리 제도를 강화하여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도모하였으며, 외교적으로는 청나라와의 관계를 중시 하면서도 조선의 자주성을 유지하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병오박해와 같은 사건으로 일부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헌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세손이었으며, 그의 죽음으로 정조의 직계 자손이 단절되었다.
헌종의 정비 효현왕후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의 정비 효현왕후 김씨는 1828년 4월 15일 김조근의 딸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에 10세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헌종과 함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보낸 효현왕후는 자손을 두지 못하고 1843년 10월 6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12월 2일에 훗날 헌종과 효정왕후와 함께 묻히게 될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능침을 조성하고 능호를 경릉이라 했다.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홍씨는 1831년 3월 6일 돈령부영사 홍재릉의 딸로 태어났다.
헌종의 정비 효현왕후가 승하(1844년)하자 헌종의 계비로 중궁에 책봉되어 5년 뒤 헌종이 승하(1849년)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19세의 나이로 대비가 되었다.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승하하자 왕대비가 된 뒤 소생 없이 생활하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어린 궁녀를 돌보았었는데, 이 아이가 후일에 조선의 마지막 궁녀인 천일청 상궁이다.
1863년 철종이승하하고, 고종이 즉위하자 홍성의 존호가 가상되었고 1890년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승하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대한제국이 개국하면서 왕태후에 책봉되었다. 1904년 1월 2일에 경운궁 수인당에서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고 구리시 동구릉에 위치한 경릉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