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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이야기

[조선왕릉] 유일한 팔작지붕 정자각! 현종과 명성왕후(명성대비)의 '숭릉' 이야기

by 하르방 스토리 2024. 3. 11.

 

 

 

 

구리시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능침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조선 제18대 왕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 김씨가 함께 잠든 숭릉입니다.

 

숭릉은 단순한 왕릉을 넘어, 조선 후기 왕릉 건축의 대전환점을 보여주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지입니다.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전경

 

 

 

1. 숭릉의 역사와 조성 과정

1) 현종의 예장(1674년): 현종이 34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아들 숙종은 태조의 건원릉 남서쪽 산줄기에  팔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능을 조성하였습니다. 

 

2) 명성왕후의 예장(1683년): 명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미 조성된 현종의 능 옆에 나란히 능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쌍릉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2. 능의 형식과 석물 배치

숭릉은 하나의 곡장(담장) 안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함 보다는 절제된 단아함이 돋보입니다.

 

1) 병풍석 생략과 간결한 조형미: 조선 전기 왕릉과 달리,  봉분을 둘러싸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두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가 재정을 아끼고 백성들의 노고를 덜고자 했던 조선 후기의 '절검정신'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2) 정교한 석물과 세호: 능침 주변에는 왕릉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가 각 2쌍, 문-무인석과 석마 각 1쌍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망주석에 새겨진 작은 동물 조각인 '세호'는 형상이 두렷하고 정교하여 석조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의 대담한 귀면 조각 역시 조선 후기 조각예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3. 관전 포인트: 유일무이한 '팔작지붕' 정자각(보물 제1742호)

숭릉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은 바로 정자각입니다.

 

1) 조선왕릉 중 유일한 팔작지붕: 조선왕릉 40기의 정자각은 대부분 소박하고 엄숙한 '맞배지붕' 형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숭릉 정자각은 궁궐 편전이나 권위 있는 사찰 건물에 쓰이던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유일한 사례입니다.

 

2) 팔작지붕이 허용된 이유: 숙종은 치열한 예송논쟁 속에서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던 아버지 현종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전례 없이 화려하고 웅장한 정자각을 통해 왕실의 엄격한 정통성과 강력한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입니다.

 

3) 웅장한 규모: 정전 5칸, 배위청 3칸의 총 8칸 규모로 지어진 조선 후기 제향 공간의 권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물입니다.

 

 

4. 명성왕후 김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여기서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는 고종황제의 정실인 명성황후 민씨보다 200년 전의 인물로, 역사 속에서는 보통 '명성대비'로 더 자주 불립니다.

 

 

5. 관람 팁 및 맺음말

동구릉 내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고즈넉한 곳에 위치한 숭릉은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를 마시고 사색하기에 제격인 장소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역사와 자연이 호홉하는 구리 동구릉의 숭릉으로 가벼운 역사 산책을 떠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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