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이야기 : 혜릉(惠陵)
혜릉은 구리시 동구릉에 여섯 번째로 조성된 조선 20대 왕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입니다. 단의왕후는 경종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합장되지 못하고 단릉 형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병약했던 단의왕후 심씨
단의 왕후 심씨는 숙종(12년) 1686년 5월 21일에 명문가인 청송 심씨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병조판서를 지낸 심익창의 딸로, 가문자체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대부 집안이었습니다. 그녀가 조선의 왕비로 간택된 배경에는 이 같은 명문가의 뿌리와 정치적 기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숙종(22년) 1696년 11세의 나이에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렸었으나, 평소 병약하여 1701년에는 중풍 등의 신경질환을 앓게 되었으며,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 2년 전인 1718년 2월 7일 33세의 나이로 소생도 없이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 왕실의 여성 중에는 후사를 남기지 못하거나,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의왕후도 그 비운의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혜릉의 역사와 형식
숙종은 단의의 시호를 추서하고 '단의빈'으로 삼았으며, 산역은 각 도에서 승군 1,000명을 징발하여 현종의 능인 숭릉 왼쪽 산줄기에 단릉 형식으로 조성하였고, 4월 16일에 발인하여 19일에 안장하였다. 2년 후인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혜릉의 능호와 영휘의 존호를 받고 '단의왕후'로 추봉 되었다.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는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에 같이 모셔져 있으나, 단의왕후는 세자빈의 신분으로 소생도 없었기 때문에 경종과 같이 묻히지 못하고 동구릉에 혜릉으로 홀로 있다.
혜릉은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의 능으로 단릉의 형식이다. 봉분은 아담하면서도 정제된 모습으로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석물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석물은 석호, 석양, 문인석, 무인석 등 전형적인 조선 후기 능제의 구성을 따르는데, 특이한 점은 무인석의 코가 유난히 크고 움푹 들어간 눈에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으로 다른 능의 무인석에 비해 유달리 이국적이고, 조각기법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능침 아래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자각과 홍살문, 수라간, 수복방 등이 배치되어 있어 왕비릉으로서 위엄을 보여준다.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단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조선의 다른 왕들의 침향이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남쪽을 바라보는 북침의 형태를 취하는데 비해 혜릉의 단의왕후는 서쪽에 머리를 두고 다리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게 또 다른 특이한 점이다. 혜릉은 단의왕후 개인의 안식처이면서 경종과 그 시대의 정치적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능역에는 장명등, 정자각, 금천교, 홍살문 등이 있으며 장명등은 망실되어 현재 터만 남아있고, 정자각은 6.25 전쟁 때 소실 되었다가 1995년에 새로 복원하였다.
조선 20대 왕 경종과 단의왕후의 역사적 맥락
경종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8년에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신분 문제와 노론, 소론의 갈등 속에서 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인물이었다. 단의왕후 심씨는 남편이 세자 시절부터 곁을 지켰으나, 정작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세상을 떠나 왕비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했다. 만약 단의왕후가 오래 살았다면 경종 곁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죽음은 경종에게 큰 상실이 되었을 것이다.
경종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하였다. 건강문제로 재위기간 동안 국정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4년의 통치로 1724년에 사망하면서 이복동생 영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혜릉이 전하는 역사적 의미
혜릉은 조선 왕릉 중에서도 비운의 왕비릉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남편인 경종과 함께 합장되지 못한 채 홀로 묻혀 있는 능은 단의왕후의 짧았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또한 혜릉은 조선 후기 궁중 여성들의 삶이 화려한 지위와는 달리 얼마나 취약하고 제한적이었는지를 말해 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동구릉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혜릉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고요한 능의 모습에서 방문객들은 권력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조선 왕실 여인의 안타까운 삶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혜릉을 바라보며 거닐다 보면, 권력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가장 인간적인 슬픔을 안고 떠난 왕비의 이야기가 마음속 깊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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