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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이야기

[조선왕릉] 동구릉에 마지막으로 조성된 왕릉 '수릉' 이야기

by 하르방 스토리 2024. 11. 24.

 

 

조선왕릉 : 수릉(綏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리 동구릉에는 가장 마지막에 조성된 특별한 왕릉이 있습니다. 바로 문조(효명세자)와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를 모신 '수릉'입니다.

수릉은 조선 후기 격동의 역사와 왕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조선 왕릉의 규칙을 깨뜨린 이례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수릉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추존왕 문조의 수능 전경

 

 

 

1. 좌우가 뒤바뀐 이례적인 합장릉의 비밀

수릉은 하나의 봉분안에 황제와 황후를 함께 모신 합장릉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릉을 앞에서 바라보면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 

조선 왕릉은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왕(남자)이 왼쪽, 왕비(여자)가 오른쪽에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수릉의 예외 구조: 

수릉은 반대로 왕(문조)이 오른쪽, 왕비(신정왕후)가 왼쪽에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 왕릉 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구조로 손꼽힙니다.

 

수릉은 병풍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한 원형 봉분 구조를 띠고 있으며, 화려한 장식 대신 절제된 미학을 보여줍니다. 특히 능침 아래 비각에는 두 개의 표석이 있는 데, 각각 추존되기 전후의 호칭인 '익종대왕과 신정왕후', '문조익황제와 신정익황후'가 새겨져 있어 대한제국 시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2. 22세의 나이로 저문 천재 군두, 문조(효명세자)

수릉의 주인공인 문조(1809~1830)는 우리에게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효명세자입니다.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조선 후기 쇠락해가던 왕권을 다시 일으키려 했던 천재 군주였습니다.

 

1) 외척 세도정치 견제: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1827년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하며 소외당했던 인재들을 고루 등용했습니다.

 

2) 백성을 위한 선정:

실학자 박규수 등과 교류하며 열린 안목으로 국정을쇄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3) 궁중 문화의 황금기:

세자 본인이 직접 악장과 춤을 지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으며, 궁중 무용인 '춘앵전'을 편곡하는 등 문화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젊은 군주라는 대리청정 3년 만인 22세의 젊은 나이로 급서하고 맙니다. 사후에 아들 헌종이 즉위하여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훗날 고종 시대에 이르러 '문조익황제'로 다시 한번 추존되었습니다.

 

 

 

3. 조선 말기 정국을 뒤흔든 철의 여인, 신정왕후

문조의 곁에 묻힌 신정왕후 조씨(1808~1890)는 조선 왕실 역사상 최장수 왕비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 효명세자를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녀는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중심을 잡은 정치가였습니다.

 

1) 고종 즉위와 수렴청정: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세상을 떠나자, 흥선군 이하운의 둘째 아들(고종)을 양자로 입양시켜 왕위에 올리는 신의 한 수를 둡니다.

 

2) 과감한 개혁 정치:

대왕대비로서 고종 초기 수렴청정을 하며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경복궁 중건, 서원 철패 등 조선 말기의 굵직한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4. 풍수지리 때문에 두 번이나 이사한 수릉의 역사

수릉이 지금의 구리 동구릉에 자리 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풍수지리적 이유로 무려 두 번이나 이장되는 수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1) 1830년 (연경묘):

효명세자 사후 경종의 의릉 왼쪽에 '연경묘'라는 이름으로 처음 조성되었음. (이후 헌종 즉위 후 '수릉'으로 격상)

 

2) 1846년 (1차 이장):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양주 용마봉(현 서울 광진구 용마산)으로 이장. (헌종 12년)

 

3) 1855년 (2차 이장):

또다시 풍수지리적 논란이 일어 현재의 구리 동구릉 위치로 이장됨. (철종 6년)

 

처음에는 효명세자의 단릉으로 조성되었던 수릉은, 1890년 신정왕후가 83세의 나이로 서거하면서 비로소 현재와 같은 합장릉(쌍릉 형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릉은 동구릉 내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선 왕릉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 재정이 어려워지던 시기의 간소화된 왕릉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구리 동구릉 '수릉' 관람 가이드

 

    (1) 위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351 (인창동)

    (2) 관람 포인트: 동구릉 내의 다른 왕릉(예: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과 비교해 보며, 문석인이 쓰고 있는 모자가 금관조복 형태를                                 띤 동구릉 유일의 독특한 양식임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3) 추천 방문 시기: 푸른 소나무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봄, 가을 산책 코스로 적극 추천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조선왕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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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왕들의 업적과 왕릉의 위치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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