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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2

[조선 왕비열전 #15]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한 정순왕후 김씨 (영조의 계비)와 수렴청정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1745~1805)만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왕비는 드뭅니다. 영조의 계비로 왕실에 들어와 정조 치세를 거쳐 순조 대 수렴청정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단순한 국모를 넘어 노론 벽파의 실질적인 지주이자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정국을 주도했습니다. 1. 15세의 나이로 영조의 계비가 되다1757년(영조 33년),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가 세상을 떠나자 왕실은 새로운 계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당시 66세였던 영조는 1759년 간택을 통해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艛)의 딸을 계비로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15세였습니다. 가문인 경주 김씨는 당시 노론 세력의 중심축 중 하나였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기품과 총명을 갖추.. 2026. 8. 8.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원릉: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비화 및 건축적 특징 구리 동구릉에 위치한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함께 안장된 합장릉입니다. 겉보기에는 단정하고 정갈한 왕릉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조선 후기 치열했던 정치적 격변과 왕실 권력 구조의 비화가 고스란히 숨어 있습니다. 1. 원릉의 역사적 배경과 얽힌 이야기원래 영조는 생전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직접 지정해 두었습니다.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가 안장된 남양주 홍릉 옆자리를 비워두고 훗날 나란히 묻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오른 손자 정조는 당시 조정의 정치적 상황과 풍수지리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로 능지를 변경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조는 정비의 곁 대신 이곳 동구릉에 먼저 자리를 잡게 되었습.. 2024.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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