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유배1 왕으로 추대받지 못한 비운의 군주, 광해군의 삶과 재평가 조선왕조 역사에서 사후 묘호(廟號)를 얻지 못하고 '군(君)'으로 남은 인물, 바로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입니다. 오랫동안 '폭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으나, 현대 역사학에서는 붕괴 직전의 국가를 추스르고 실리를 택한 유능한 군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명분과 실리, 권력과 파멸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광해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정리했습니다. 1. 전란이 낳은 리더십, 세자 광해군1575년(선조 8년),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이자 후궁 공빈 김씨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서자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나, 어릴 적부터 명석함과 뛰어난 처세로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입니다. 왜군의 급습으로 도성이 함락되고.. 2025. 8. 5. 이전 1 다음 반응형